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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능률협회 글중에서
 이름 안성맞춤
 날짜 2009-06-03 10:29
 조회 2,307
20세기 미국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제너럴 모터스(GM)가 경영실패 등의 이유로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 ‘GM에 좋으면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는 말이 회자(膾炙)될 정도로 그 명성과 위상은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GM이 반세기 넘게 누려온 세계 제1의 자동차 회사이자 세계최고기업의 위치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자칫 파산의 위기에까지 몰려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포드 자동차의 흥망성쇠를 다시 살펴보기 위해서다. 자동차 산업 초창기에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포드가 GM에 첫 번째 자리를 내준 것은 GM의 몰락과는 그 원인이 다르다.

포드의 창업자인 헨리 포드는 미국에 대량소비시대를 열었다. 이른바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창조한 기업인 중 하나였다. 포드자동차가 생산한 ‘T형 모델’의 자동차가 미국 가정의 필수품처럼 자리 잡으며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가 개막된 것이었다. T형 모델이 처음 선 보인 해는 1908년이었다. 그런데 생산을 중단한 1927년까지 약 20년간 1500만대나 팔린 것이다.

대중화 우선 경영이 포드 몰락 불렀다
“한 대의 자동차를 만든다는 것은 다른 자동차와 똑같이 만드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모든 자동차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헨리 포드의 말이다. 이에 더해 포드는 자동차 색에는 “검은 색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1904년 불혹의 나이로 창업을 한 포드의 꿈은 값싸고 튼튼한 대중적인 자동차를 미국 국민에게 보급하는 것이었다. 그의 꿈이 실현되면서 백만장자들만의 장난감이었던 자동차가 일반 서민의 필수품이 됐다. 1923년 한 해 동안 포드사는 201만 1025대에 달하는 T형 모델의 자동차와 트럭을 생산했는데, 이는 이후 32년간 깨지지 않았던 대기록이었다. T형 모델의 값은 초기에는 850달러로 비교적 비쌌지만 조립라인을 통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면서 값도 점차 떨어져 1924년에는 290달러까지 내려갔다.
‘음식 없이는 살아도 차 없이는 못산다.’ 이 무렵 미국 노동자 계급사이에서 유행한 농담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잘 말해 준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할까. 붕어빵과 같은 검은 색의 T형 모델이 미 전역을 휩쓸고 돌아다니자 새로운 자동차의 취향이 탄생한다. 대중은 이제 ‘붕어빵차’에 싫증이 난 것이다. 막말로 빚을 내서라도 좀더 품위 있는 자동차를 구입하고픈 욕망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회사들 역시 사람들은 같은 모델이라도 모양이 끊임없이 바뀌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무엇을 추구하는, 이른바 차별화의 욕구라고 할 수 있겠다.
포드사가 GM에게 세계 최대·최고 기업의 위치를 내준 원인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대중화를 우선한 경영에 있다고 한다. 경쟁회사들은 이미 대중의 변덕을 수용해 자동차의 명품화를 진척시키고 있었는데도 포드사는 T형 모델에 오랫동안 안주한 것이다.
‘한국 최고의 가게’에서 필자가 명품경영의 사례로 소개한 노포(老鋪)는 ‘양협토기’ ‘박창영 갓방’ ‘목기 지산공예’ ‘안성맞춤 유기공방’ 등 4곳이다. 모두 우리의 전통생활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물품을 만들고 있다.
경기 안성시에서 5대를 이어오며 옹기장이로 살고 있는 ‘양협토기’의 유수봉 대표는 옹기의 탁월한 효능과 가치를 잊고 사는 요즘 사람들이 못내 아쉽다.
“옹기는 사람의 피부처럼 숨을 쉽니다. 표면을 손으로 만져 거칠게 느껴지는 곳엔 예외 없이 숨구멍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간장이나 된장을 담가 놓으면 항아리 표면의 여기저기에 흰색의 소금 꽃이 피는 겁니다. 그래서 옹기는 신선도 유지 능력이 어떤 종류의 용기보다 탁월합니다.”
옹기는 오히려 일본에서 더 인기가 높다. 유씨의 옹기가 일본에서 최상품으로 평가 받으면서 몇 년 전 수출길이 열려 다소 허리가 펴졌다.

조선시대 갓은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관모(冠帽)였다. 선비는 어떤 보배로운 물건보다 갓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자택에 공방을 차려 놓고 갓일을 하고 있는 박창영 씨는 인간문화재 제4호 갓일 입자장(笠子匠)이다. 갓일은 증조부대부터 시작된 가업이다. 그의 갓 가운데 최고 명품은 1000만원 이상을 호가한다.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져야 명품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정성을 다해 갈고 닦으면 그게 바로 보석이다.”
전북 남원시에서 ‘지산공예’를 운영하는 박만수·만호 형제는 어려움에 마주칠 때마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박형준)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떠올린다. 전라북도 일대에서는 손꼽히던 목기장이었던 선친의 유업을 이은 형제의 목기도 이제는 어엿한 명품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옻칠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형(만수)은 칠장, 나무 다루는 재능이 뛰어난 동생(만호)은 선친을 뛰어넘는 목기장이 되길 희망한다.
유기(鍮器)는 놋쇠로 만든 기물을 일컫는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꼭 들어맞는다는 의미의 ‘안성맞춤’은 유기의 고장 안성의 장인정인에서 태어난 말이다. 경기 안성시의 ‘안성맞춤 유기공방’ 대표 김근수 씨는 불에 녹인 쇳물을 틀에 부어 기물을 만드는 주물기법의 달인이다. 인간문화재인 김근수 씨의 놋그릇은 한국음식점을 중심으로 꾸준하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우리나 일본이나 한자로는 똑같이 쓰는 노포(老鋪)는, 그러나 그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의 노포는 그냥 오래된 가게 정도의 의미에 머물고 있다. 물론 남과는 다른 무엇이 있기 때문에 오랜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은 하지만 노포가 그대로 ‘명품(名品)’의 이미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다르다. 일본말로 노포는 ‘시니세’라고 발음하는데 이 말은 곧 명품을 뜻한다. 엄밀히 말해 명품과 최고품은 큰 차이가 있다. 명품은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물품을 말하며 대량생산을 전제로 한 최고품은 전통과 문화의 향기가 없는 비싼 상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값비싼 외제상품이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우리가 세계에 내놓을 명품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꼽자면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금속활자, 팔만대장경, 거북선, 신라금관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렇듯 명품은 최고품과 달리 시공을 초월해 영원불멸의 삶을 산다. 장인의 혼으로 태어난 물품이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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